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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퇴 경주마

예전에 외부에 발표한 글이다. 읽어주시면 고맙겠다.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글)


영화나 다큐멘터리 보다가 훌쩍거린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영화 '워낭소리'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면서 훌쩍거린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사진:http://www.two-views.com>

 

바바로(Barbaro)라는 말이 있었다. 짧은 삶을 불꽃처럼 살다가 갔다. 두 살에 경주마가 되었다. 달리는 데는 천부적인 소질을 가졌다. 데뷔하자마자 유명한 경마대회에 모두 나갔고, 모두 우승했다. 여섯 번째는 세계 최고의 대회,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2분', '장미를 향한 질주'라는 켄터키 더비에 출전했다. 2위와는 16m 거리를 두고 우승해 버렸다. 1972년 어펌드(affermed) 이후 사라진 삼관마(Triple Crown) 탄생의 기대가 끓어올랐다. 5주간 3개의 경주에서 우승해야 하는 삼관마, 미 대륙을 횡단하며 다양한 거리에서, 최고의 말이 출전하는 경주에서 우승하는 말은 30년간 나오지 않았다. 모두들 삼관마 탄생 현장을 지켜보고 싶어 했다. 2006년 5월 20일, 두 번째 경주인 프리크닉스 스테익스 경주, 바바로는 출발 후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구름처럼 모인 관중과 텔레비전 중계를 지켜보던 이천만 시청자는 경악했다. 바바로는 오른 쪽 뒷다리를 들고 섰고, 수의사는 그 부위가 골절됐음을 직감했다. 펜실베이니아 수의대학으로 옮겨졌고 최고의 의료진이 수십 시간에 걸친 수술을 시작했다. 바바로의 뒷다리는 폭탄 맞은 것처럼 조각나 있었다. 59군데를 쇠못으로 고정해야 했다. 바바로의 상태는 호전과 악화를 거듭했다.

미국민들은 그때마다, 목장에서 그를 만날 희망을 담은 편지를, 또는 병마를 견디고 살아나기를 기도하는 엽서를 보냈다. 바바로를 가족으로, 친구로 생각했다. 희망과 절망을 거듭하는 8개월이 지난 뒤, 상황은 명확해졌다.

바바로는 더는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마주는 안락사를 결정했다. 치료 기간은 길었고, 힘들고,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있었지만, 마주는 그 시간이 고통스럽기만 한 건 아니었으며,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았다고 했다. 그를 기억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그녀는 바바로의 유해를 켄터키 더비 박물관 밖에 묻었다. 그를 사랑한 사람들이 비용 부담 없이 바바로를 추억하길 바랐다. 마주는 말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바바로의 죽음 이후, 펜실베이니아 대학에는 기금이 쇄도했고, 대학은 그 돈으로 대형동물의 치료를 위한 기금을 설립했다. 미국경마협회도 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바바로 기념재단을 만들었다. 말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HBO가 만든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울먹였다.

 

 

              <사진:https://www.pinterest.com>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동물까지 그렇게 챙겨야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다. 맞는 말이다. 멀쩡한 사람도 살기 힘든데 우리가 장애우까지 챙겨야 해? 이런 질문과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나는 한 걸음 더 나가고 싶다. 바바로는 되고, 능력 없는 경주마는 최소한의 보호라도 받으면 안 되나?

 

여러분들이 기억하는 말은 무엇인가? 알렉산더대왕의 애마 부케팔로스는 알렉산더와 함께 페르시아와 인도를 정복했다.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그림에서도 알렉산더는 부케팔로스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부케팔로스는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입은 치명상으로 30살의 나이에 죽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를 가장 친한 친구이자, 형제, 충신으로 여겼고, 부케팔로스를 기리기 위하여 도시를 건설했다(알렉산드리아 부케팔로스다). 부케팔로스의 죽음이 알렉산더의 죽음을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역사적으로 명마와 영웅은 운명을 함께했다. 관우와 생사를 함께 했던 적토마는 자신이 선택한 주인이 아니면 태우지 않았고, 관우가 죽은 후에는 식음을 전폐하다 굶어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항우의 오추마는 사면초가로 유명한 해하 전투에서 패한 항우가 오 강에 이르러 죽음을 결심하고, 오추마를 살리기 위해 뗏목에 태워 보내지만 오추마는 항우가 죽음을 결심한 것을 알고 스스로 물에 뛰어들었다.

 

영화로 로마 시대 검투사 경기를 봤을 것이다. 사람이 싸우고, 피 흘리고, 죽어 나간다. 웃고, 떠들고 환호한다. 그 죽음을 보기 위해 콜로세움에 모인다. 피 흘리며 죽을 때까지 싸우는 개들의 싸움은 어떨까? 경주에 나서는 말을 본 적 있는가? 긴장이 가득한 말이 물똥을 싸고, 그 냄새가 퍼진다. 눈치 빠른 말들은 불안함을 못 이겨 눈을 희번덕이고 불규칙하게 몸을 뒤척인다. 배 아래에는 뚝뚝 구슬만 한 땀이 떨어진다. 발주대 앞에서는 죽음의 그림자를 예감한 말들이 게이트 진입을 거부한다. 강압에 못 이겨 발주대에 들어서면 죽음의 레이스가 시작된다. 매주 1-2두의 말이 경기 중 골절과 인대파열로 자신의 마방에 돌아가지 못하고, 주로에서 거친 숨을 거둔다. 경주를 무사히 마친 말들도 작게는 찰과상, 크게는 부종, 인대 손상으로 자신의 청소년기를 보냈던 경주장을 떠나고, 요행히 부상을 피한 말들은 모래가 가득한 핏빛 눈동자를 껌벅거리며 내달에 있을 죽음의 경주를 준비한다. 마구간 또한 쉴 곳이 아니다. 한 평 남짓한 공간, 600kg 몸을 한 바퀴 돌리기도 어렵다. 24시간 이곳에 갇히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상 행동을 보인다. 동물원의 늑대, 표범이 보이는 이상행동이다. 말을 극한의 스트레스 몰아넣는 경마를 보며, 경마장을 찾는 사람들은 말들의 질주, 경마를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단다. 그러면서 자신을 '말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 한다. 그들이 말을 좋아한다는 것, 충청도 사람이 말하는 '개 혀?'와는 얼마나 다를까? 그런 악조건을 견뎌낸 말들은 경마장을 떠난 후 어떻게 될까?

 

경주마를 가진 마주라고 하면 모두 묻는다.
"은퇴하면 그 말은 어떻게 해요?"
좋은 질문이다. 경마 관계자에게 물으면 거침없이 답한다.
"대부분 승용마로 활용하고, 아주 우수한 말은 씨수말, 씨암말로 활용됩니다."
모범답안이다. 승마하는 사람은 다시 묻는다.
"승용마로 적합하지 않은 말은요? 승용마로 적합한 말은 열 마리 중 몇 마리쯤 되나요?"
대답해야 할 경마관계자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모르는게 아니라 알고 싶지 않다는 게 정확한 답이다. 씨수말로 가는 말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수 천마리 중 한마리다. 로또 당첨에 비견될 일이다. 승용마로 간다는 그 말, 그 말들은 어떻게 될까?

 

바바로의 죽음에 눈물 흘린 미국민들이 잊은 게 있다. 바바로와 같은 해 태어난 3만여 필의 경주마다.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부는 미국의 경마장으로, 일부는 경매에서 해외로 팔려 갔다. 팔리지 못한 말은? 경마장에 갔으나 바바로처럼 뛰어난 성적을 보이지 못한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1,500필의 경주마가 생산된다. 경주마로 오기 전에 다치고, 안 팔리고, 질병으로 죽는 말이 대략 500필이다. 천 마리가 경마장으로 들어온다. 훈련과 경주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안락사하는 말이 연중 100필에서 150필이다. 그럼 얼마나 남는가? 750필에서 850필이 세 살 때까지 살아남는다. 이 가운데 절반은 건강한데도 성적 부진으로 도태된다. 1,000필이 경마장에 들어오면 1,000필이 나간다.

1,000마리의 말이 나오면, 평균적으로 100필이 번식용으로 새로운 삶을 찾는다. 성적을 낸 암말이다. 평균적으로 200필이 부상으로 죽는다. 나머지 700필은 승마장으로 간다. 승마장으로 가는 말은 털 색깔에 따라, 국산 말이냐 외산 말이냐에 따라, 경마장에서 몇 등급까지 뛰었느냐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 국산이 비싸고, 흰색 털일 수록, 높은 등급까지 뛰었을수록 가격이 비싸다. 보통은 백만 원, 2백 만원에 팔린다. 승용마로 순치시키기 위해 며칠간 테스트해 본다. 가능성이 없거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면 바로 내보낸다. 순치가 안 되는 말은 없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말이다.

말 전문가는 말한다. 세상에 순치시킬 수 없는 말은 없다. 내가 다니는 승마장의 사장은 말을 사랑하는 분이다. 본인 말로 단 한 마리의 말도 관상용으로 보낸 적이 없다. 상처받은 말을 1년간 보살피며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법을 가르쳤다. 이제는 누가 가더라도 믿고 따른다. 누가 타도 애정을 주고 충성심을 보인다. 말에서 내리면 사장님이 말한다.
"아빠가 아까 너무 몰아붙였지? 힘들었지?"

 

경마장에서 인간들에게 갖은 고통을 당한 말들은 사람을 믿지 못하고 매우 예민해진다. 하나쯤은 나쁜 버릇, 악벽을 가진다. 물거나, 사람을 차거나, 쉽게 놀라거나, 자해하거나 하는 습관이다. 이미 심적 상처를 깊이 받은 말은 승마장에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승마장 사람들이 애정으로 대해도 믿지 못하고 놀란다. 철제에 부딪히고 사람도 넘어지게 해서 상처을 입힌다. 이런 말들은 어떻게 처리될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말은 어디로 가나요?
"한 달 관리비용으로 80만 원이 나가요. 두 달이면 말값이 나와요.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죠. 경마장에서 말은 쏟아져 나오는데... 대부분 관상용으로 보내요."
승마장 주인의 답은 여기까지다. 다시 캐묻는다.
"관상용으로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해요?"
"그건 모르겠어요."
이분들이 말하는 관상용은 하얀 거짓말이다. 경마장의 마주, 조교사, 경마객이 자신을 죄의식에서 구하기 위해, 갔으면 좋겠다고 스스로 믿고 싶은 곳이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경주마를 포함해 매년 9만 필에서 14만 필의 말이 도살장으로 간다. 버려지거나 보호받지 못한다. 도살되어 고양이 먹이로 팔린다. 바바로를 가족으로, 형제로 생각한 미국민이 바바로의 형제, 친구들을 도살시켜 고양이 먹이로 먹인다. 이런 사정은 국가를 정지시키는 경주(The Race Stop Nations), 멜번컵의 나라 호주도 다르지 않다. 호주에서는 해마다 10,000여필의 말을 장총으로 살해하고 동물 먹이로 사용한다.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부딪히면 그들은 말한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돼지나 소, 닭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그들이 말하는 '말 좋아하는 사람'의 실체다. 이완용이, 친일파들이 해방되고 한 말이 있다. '어쩔 수 없었다.' 자신에게 목숨 바쳐 충성하고, 우승의 기쁨을 주고 환호했던 말을, 필요가 없어진 순간, 우리 애, 우리 가족이라 말한 말에게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건 당신들이다. 어쩔 수 없는 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 얼어버린 마음이다. 경마로 돈을 버는 한국마사회가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경주마의 순치에 조금만 더 노력을 기울여 승마장으로 내보낸다면 많은 말이 살 수 있다. 말의 주인이라는 마주들에게 은퇴한 말에 대해 일정액의 순치기금을 부과하는 것도 방법이다.

 

인간미를 가진 나라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말 버리는 걸 부끄러워할 줄 알고, 동물보호단체와 동물복지단체의 요구에 귀 기울인다. 홍콩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경주마 구입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말의 복지를 최대한 고려한다. 은퇴 후에는 모든 말을 마주협회에서 순치시켜 마주가 승용마로 타게 한다. 다친 말, 장애를 가진 말을 평생 데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걸 자랑으로 여긴다.

모든 말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그대: 퇴역마 보살핌

(마주협회에 쓴 글)


어떤 스포츠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축구라면 펠레, 야구라면 베이브 루스, 농구라면 마이클 조던이 그런 사람이다. 경마를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2010년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경마인에게 그의 삶은 영화 보다 더욱 극적이다. 페니 체너리라는 여인이다. 한적한 미국 소도시에서 승마 하고 적십자비 모금 자원봉사 하던 변호사의 아내, 네 아이의 엄마는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병환으로 목장 운영이 어려워진 아버지의 소식을 듣는다. 그날 이후 그는 경마인이 되었고, 평생을 세크리테리엇의 엄마로 살았다. 2세 때 챔피언 경주마가 되었고, 2,000미터 1분 59초의 세계 기록으로 삼관마에 오른 명마.
이런 명마를 보유한 마주도, 이름 없이 사라진 경주마를 보유한 마주도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경주에서 퇴역한 말의 보살핌이다. 바바로의 어머니, 백광 할아버지로 살고 있는 잭슨 부인과 이수홍 마주님도 피할 수 없는 문제다.
 
마주에 뜻이 있는 부부가 경마장을 찾았다. 마방으로 초대해서 경주마를 보여주고, 마주의 보람과 명예를 설명했다. 젊지만 IT기업 몇 개를 운영하는 청년실업가다. 부인은 경주마 한 마리, 한 마리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는 결심한 듯 물었다.
“말을 사서 경주하다가 은퇴하면, 어떻게 해야 되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가져야 하는 질문이다. 마주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가져야 하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이 없는 사람이라면 절대 사업파트너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 말을 대하는 모습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조교사가 알아서 처리해줘요.”
비정한 마주에게 들을 수 있는 답이다. 조교사가 알아서 어떻게 처리할까?
 
누구에게나, 언제든 다가오는 퇴역문제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1,500여필의 경주마가 생산된다. 이 가운데 경마장에 오기 전에 다치고, 안 팔리고, 질병으로 죽는 말이 대략 500필이다. 1,000 마리 정도가 경마장으로 들어온다. 훈련과 경주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안락사하는 말이 연간 100필에서 150필이다. 750필에서 850필이 세 살 때까지 살아남는다. 절반은 건강한데도 성적 부진으로 도태된다. 해마다 1,000필이 경마장에 들어오면 1,000필이 나간다. 평균적으로 100필이 번식용으로 새로운 삶을 찾는다. 성적을 낸 암말이다. 200필이 부상으로 죽는다. 나머지 700필은 승마장으로 간다. 승마장에 간 말은 어떻게 될까?
 
미국에는 퇴역마 시장이 있다. 부상당한 말들은 그 자리에서 사살한다. 퇴역마 시장에서는 일부 승용마로 팔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도살업자에게 넘어간다. 해마다 경주마를 포함해 9만 필에서 14만 필의 말이 도살장으로 간다. 버려지거나 보호받지 못한다. 도살되어 고양이 먹이로 가공된다. 이런 사정은 국가를 정지시키는 경주(The Race Stop Nations), 멜번컵의 나라 호주도 다르지 않다. 퇴역마 거래시장이 있고, 대부분의 말이 육가공업자에게 넘어간다. 호주에서는 해마다 10,000여필의 말을 장총으로 살해하고 동물 먹이로 사용한다.
 
말을 사면 그 순간부터 퇴역의 고비가 온다. 어느 날 조교사의 연락이 있다. 평일 조교사가 전화하면 가슴이 덜컹 내려 앉는다.
‘말의 부상?’
조교사도 평일의 연락이 마주에게 얼마나 큰 공포인지 알기에, 평범한 부상으로는 전화하지 않는다. 또는 부푼 기대로 참관하는 경주에서 내 말이 갑자기 절뚝거리거나, 중도에 경주를 포기한다. 어려운 결정을 요구하는 시점이다. 2세마, 3세마는 대부분 보험 가입한 상태다. 경주마로 쓰지 못할 정도면, 경주부적격마가 되면, 보험회사는 보상금을 지불하고 말을 인수 한다. 보험사는 대부분 말을 도살장으로 끌고 가 개나 고양이 밥으로 가공한다. 개중에는 경주마로는 부적합하지만, 승마하는 데는 지장 없는 말도 많다. 이걸 피하는 방법? 보험사와 협상하는 것이다.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그 말을 사도록 하고, 나중에 내가 다시 사는 것이다.
 
불행하게 훈련 또는 경주 중 부상으로 회복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발을 다쳐 서 있을 수 없는 말은 회복이 어렵다. 수의사는 안락사를 권한다. 어떤 이는 그 말을 육가공업자에게 매각한다. 다쳐서 피 흘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경주마를 말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게 하고, 도살장에 갈 때까지 고통을 준다. 안락사 비용과 육가공업자에게 받는 고기값 차이 3백만 원 때문이다. 마음 약한 사람들은 살릴 방법이 없겠냐고 눈물로 호소한다. 산다고 더 행복한 날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말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해주는 것이 낫다. 가장 어렵게 말을 보내는 순간이다.
 
다치지 않는 말도 언제나 살얼음판이다. 잘 뛰리라는 희망과 그랑프리 출전의 기대를 안고 산 말이다. 말이 경마장에 들어온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조교사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참다못해 물어 본다.
‘말 어때요?’
‘아직 어려서 발을 뻗지 못해요. 지켜봐야죠.’ 또는
‘말이 조금 늦되는 것 같아요. 아직은 몸 쓸 줄 몰라요.’
이런 답이 돌아온다. 빠르면 석 달, 늦으면 1년이 지나서 주행심사 공고가 뜬다. 주행심사가 늦는 말은 훈련 중에 악벽이 있거나, 훈련을 견디지 못해 부상이 있거나, 경주 적응이 더딘 말이다. 주행심사에서 출발도 시원하지 않고, 끝 걸음도 시원하지 않다. 게이트에 들어가지 않아서, 직선으로 뛰지 않아서, 1000미터를 1분 07초 이내에 들어오지 못해서 주행검사에서 불합격된다. 여러 번 해도 진전이 없다. 이쯤이면 퇴역이 눈앞의 문제가 된다. 이렇게 경주도 못 해보고 나가는 말이 연간 80마리쯤 된다. 경주에서 곧잘 뛰던 말도 하나 둘 부상이 생긴다. 계인대염, 건염, 굽 부상으로 자주 휴양가고, 부상으로 성적이 점점 부진해진다. 하위군에서는 잘 뛰던 놈이 상위군에 올라가서 바닥권을 맴 돌면, 조교사가 눈짓한다.
‘이젠 어려워요.’
 
조교사도 성적나지 않는 말, 한계가 온 말을 계속 관리하기 어렵다. 그들에게는 성적이 생계와 직결된다. 신마가 없으면 성적도 없고, 수입도 없다. 조교사의 눈빛이 있으면 본격적으로 말의 은퇴 후 삶을 고민해야 한다.
 
마주의 보호 없는 퇴역경주마, 비참한 최후
섭서디는 경마팬이라면 모두가 기억하는 말이다. 살아있는 혈맥 미스터프로스펙터의 막내 아들이다. 미스터프로스펙터의 가장 마지막 아들이, 끝까지 우리 경마장에서 뛰었다는 것으로 경마사적 의미를 갖는 말이다. 성적 또한 대단했다. 10살 때까지 경주에 나갔고 37번 출전해서 18번 우승했다. 2009년 당시 상금으로 10억을 벌었다. 2005년 그랑프리에서 우승했다. 그해 연도대표마로 선정됐다.
밸리브리 또한 기념할 만한 말이다. 53번 뛰었고 열 살 때까지 뛰었다. 상금으로 10억을 벌었다. 2007년 그랑프리 우승마다. 경마팬은 2006년, 2007년 연도대표마로 선정했다. 이 말들은 어떻게 됐을까?
 
2009년 가을, 경기도 인근의 승마장을 찾았다. 과천과 멀지 않은 곳에, 한눈에 봐도 남루한 승마장이 있다. 마방은 지하실처럼 어둡고, 관리의 손길은 뜸한 곳으로 보였다. 그 어둡고 좁은 마방 한 켠에 퇴역한 섭서디가 있었다. 눈을 의심했다. 섭서디가 여기에? 그리고 몇 달 후 그의 소식을 들었다. 그 명마가 산통으로 죽었다. 밸리브리는 그를 아끼는 조교사의 배려로 마사고에 교육용으로 기증했다. 마사고에서 어떻게 관리했는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가 경마장을 떠난 지 6개월, 다시 소식을 들었다. 병으로 죽었다. 최고의 말, 그랑프리 우승마, 연도대표마가 이 지경이라면, 그에 미치지 못하는 말들은 어떻게 될까? 승마장으로 간다는 당신의 퇴역마는 어떻게 될까?
 
조교사와 관리사는 말을 관리하면서 승용마로 적합한 말과 부적합한 말을 파악하고 있다. 눈치 빠른 승마인은 이런 말을 우선적으로 사간다. 승마에 좋은 말이라면 천만 원도 아깝지 않다. 순치시키면 3천만 원도 받을 수 있다. 이런 네트웍이 없는 조교사는 퇴역마 처리업체에 도매로 넘긴다. 한 마리에 백만 원 내외다. 그들이 가져가면 백마와 1군마, 걸음 좋은 말은 천만 원, 천오백만원 받을 수 있지만 승마용으로 적합하지 않는 말도 있기 때문에 안 팔린 옷, 땡처리 무게로 거래하듯, 마리당으로 거래한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 세상에 순치가 안 되는 말, 승마용으로 부적합 말은 없다. 있다면 기념물에 가깝다. 순치에 시간이 걸릴 뿐이다.
 
경마장에서 인간들에게 갖은 고통을 당한 말들은 사람을 믿지 못하고 매우 예민해진다. 하나쯤은 나쁜 버릇, 악벽을 가진다. 물거나, 사람을 차거나, 쉽게 놀라거나, 자해하거나 하는 습관이다. 이미 심적 상처를 깊이 받은 말은 승마장에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승마장 사람들이 애정으로 대해도, 믿지 못하고 놀란다. 철제에 부딪히고 사람도 넘어지게 해서 상처를 입힌다. 이런 말들은 어떻게 처리할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2007년 여름, 늦은 오후에 남양주 소재 승마장에 말차가 도착했다. 기사가 승마장 사장과 몇 마디 나누더니 실어온 말을 내린다. 네 마리다. 젊은 교관이 한 마리, 한 마리 타본다.
‘어때?’
‘못 쓰겠어요.’
네 마리 모두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기사는 말을 태우고 다시 떠난다.
‘저 말은 어떻게 돼요?’
‘다른 승마장으로 가지요.’
‘아무도 사지 않으면요?’
‘그 땐 처리하는 곳이 있어요.’
몇 년이 지난 뒤 처리하는 곳을 본 사람에게 들었다. 끔찍했단다. 무허가, 불법 도살장이다. 전에 경마장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할 일이 없어 그런 일을 한단다. (2016년 6월 2일, 군산경찰서는 충남 부여군 소재 폐축사에서 무허가로 경주마를 도축하여 말고기를 유통․판매한 일당 4명을 체포했다. 이들이 도축하는 방법과 현장은 당신이 어떤 상상을 하던 현실은 그 절반이다.) 마주의 보호 없는 퇴역경주마. 그들의 삶은 이렇게 끝난다.

 

 

          불법도축현장, 국제뉴스 사진


퇴역마의 삶에 대한 관심과 정부대책
2013년 3월 22일, 말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슴 아픈 소식이 있었다. 말을 좋아하는 사내가 블로그에 사진을 올렸다. 자기 돈으로 제주도 가서 훌륭한 말 사진 찍고, 말 이야기 쓰는 사람이다. 사진 찍으면서 울었단다.
경마인 모두가 인정하는 역대 최고의 경주마. 팬들이 직접 뽑은 역대 최강의 경주마. ​최고대회인 그랑프리에서 2연패 했고, 연도대표마를 지냈으며 "천마급"의 은퇴식도 마련해 준 경주마.
그 말이 거지 중의 상거지, 행려병자 중 최고 행려병자로 나타났다. 눈은 초점을 잃었고, 부실한 영양상태가 한눈에 나타나고, 금빛으로 빛나던 털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곰팡이가 새 도시를 지었다. 그를 사랑했던 팬들은 사진을 보고 분노에 몸을 떨었다. 마주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가 겪은 사연은 이렇다. 구단주인 마주는 씨수말로 활용하도록 경주마 생산 목장에 맡겼다. 목장주는 흔쾌히 그를 받았다. 소유권은 목장주로 넘어갔다. 그런데 데려와 검사해보니 그에게 생식능력이 없다는 게 밝혀졌다. 목장주는 마사회에 교육용 말로 기증했다. 소유권은 마사회로 넘어갔다. 기증 받은 교육원에서 교육용으로 사용하려고 보니 너무나 드세다. 그를 마구간에만 가두어 놓았다. 그에겐 구치소다. 그 구치소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스트레스와 부실한 관리로 지치고 병들어 갔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외로움, 움직이지 못하는 좁은 공간, 그 생활 속에 피부병도 생겼다. 그는 저항할 힘도 없었다. 잘 때도 서서 자는 것이 말의 본분인데, 지친 그는 아무 데고 주저앉았다.
 
소식 전한 사람을 중심으로 여론에 호소했고, 말을 장수목장의 관상용으로 관리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작은 정성으로 모은 굴레도 말에게 씌워 줬다. 마침내 마사회가 움직였고, 그는 장수목장에서 여생을 보내게 됐다. 이 사내들은 시간 날 때마다 장수육성목장을 찾는다. 말을 사랑하는 사람, ‘동반의강자’를 사랑하는 사람, ‘동반의강자’의 전설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다.
퇴역마 보살핌의 모범사례는 또 있다. 백광의 소유주인 이수홍님은 백광의 팬과 함께 자비로 은퇴식을 마련했다. 말이 아플 때는 치료에 전념했다. 퇴역 후 씨수말로 활동하는 백광을 끝까지 보살피고 있다. 쾌도난마 또한 뛰어난 말이었다. 소유주인 남기태 마주는 쾌도난마를 씨수말로 보내면서, 이 말과 교배한 새끼말을 사는 사람이 없으면 자신이 사겠다는 조건까지 내걸었다. 은퇴한 말의 노후까지 책임지는 아름다운 마음이다.
 
퇴역마에 대한 경마팬과 마주의 관심이 높아지자 마사회와 농림수산식품부는 올해 경주마순치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퇴역경주마 40두를 대상으로 전문 순치교육을 시행한단다. 마사회가 20두, MOU를 맺은 시․군․학교가 20두를 순치한다. 프랑스 조련 전문가 3명을 초청해서 5개 기관에 순치훈련지식을 전파하고 10월에 평가하겠단다. 순치한 말은 경매로 매각한다. 내년에는 민간승마장에도 기술을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안하는 것 보다는 낫지만 전형적인 전시행정, 탁상행정이다. 한해 경마장에서 나오는 말이 1,000마리다. 40 마리면 코끼리 비스킷이다. 게다가 핵심 내용이 교육이란다. 마사회와 농림수산식품부는 민간 승마장이 순치 기술이 없어서, 경주마를 승용마로 전환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승용마로 순치? 시간만 주어진다면 나도 할 수 있다. 정성만 들이면 몇 년간 승마한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더욱 맘에 들지 않는 것은 농림수산식품부 관료답게 넘쳐나는 퇴역마를 도살해서 육가공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한해 퇴출되는 1,000마리의 말 가운데 몇 마리만 순치시키고, 도살하겠다는 것이다.
 
경마가 아름다운 나라, 홍콩의 퇴역마 관리
퇴역마 보살핌에 가장 모범적인 나라는 홍콩이다. 홍콩은 1,100두의 말이 있지만 쉬는 말은 10두 내외다. 공식적인 데이터는 없지만 그들이 보유한 부상치료를 위한 마구간이 10개뿐이라는 것으로 짐작한다. 한국 경주마가 두살 후반에 경주마로 데뷔해서 대략 2년도 있지 못하고 퇴역해서 행방불명되는 반면, 홍콩 말들은 12살, 13살 말이 수두룩하다. 오히려 이 나이에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말을 관리하는지 알 수 있다. 은퇴한 말은 어떻게 될까?
 
해마다 은퇴하는 소수의 말은 더욱 특별히 관리한다. 홍콩자키클럽(Hong Kong Jockey Club, HKJC)이 운영하는 BREC이라는 승마센터가 이 역할을 담당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장 선진화된 퇴역 경주마 관리시설이다. 은퇴하는 말은 수의사의 건강검진을 받고 적합한 용도를 결정한다. 이후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국제적으로 공인된 영국의 전문인력이 경주마를 승용마로 변환하는 교육을 수행한다. 길고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말의 체형을 바꾸고, 태도와 마음가짐을 바꾸는 작업이다. 누가 타도 안전하고, 순종적인 말로 전환시키는 작업이다. 이렇게 순치가 끝난 말은 우선적으로 해당 말의 마주에게 제공된다. 은퇴하는 순간 소유권은 HKJC로 넘어가지만, 마주는 영구임대권을 보유해서 임대료를 지불하고 영원히 그 말을 탈 수 있다. 필요한 말 관리 지식과 승마기술은 HKJC와 BREC이 끝까지 제공한다. 마주가 타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 그 말은 BREC에서 일반인을 태우거나, 말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중국 본토의 승마장에 기증한다.
HKJC는 7개의 승마시설을 직접 운영하고 있고, 말 보호를 위해 75킬로그램 이상의 사람은 승마를 금지할 정도로 말을 보호한다. 승마비용은 우리 돈으로 5만원 정도다. 최근에는 말이 절실히 필요한 개발도상국에 기증하는 사례도 있다. 일본과 홍콩의 사례에서 보듯 승용마로 순치가 안 되는 말은 없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이다.

 

 

                    BREC을 방문한 어린이들

 

 

               BREC 마사 시설

 

 

                    BREC 승마교육, 경주마가 이렇게 멋진 승용마로 변했다.


마주들이 관심을 가져야
퇴역마의 삶에 관심 없는 마주는 단연코 없다. 승마장 다니면서 퇴역한 말의 소식을,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 마주님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지고 소식 전해준 내게, 전에 없던 친근감을 보인다. 떠나간 말 소식을 궁금해 하고, 잘 지내길 간절히 바란다는 방증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정책은 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육가공과 도살에 중점을 둔 것이다. 시비스킷의 조교사 토마스 스미스는 말한다.
‘다친 말도 쓸 곳이 있다. 조금 부상 입었다고 생을 포기할 수는 없다.’
하물며 멀쩡한 말이다. 세상에 순치할 수 없는 말은 없다.
 
농림수산식품부와 마사회가 관심을 보였다면 마주협회가 나서서, 시범사업으로 끝내지 말고 퇴역마 모두를 순치시키는 순치센터로 정착시켜야 한다. 퇴역마 보살핌은 마주와 마주협회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퇴역마 순치를 위한 부담금 신설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 동물학대라는 비난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경마가 살아남으려면 필요한 일이다. 경마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농림수산식품부의 대책 이전에도 퇴역마 보살핌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조교사에게 맡기지 말고 마주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부상당한 말은 완치시켜서 내보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말을 직접 순치시켜 승마하는 사람, 직접 탈 사람에게 인도하는 것이 방법이다. 승마인들은 아끼던 말을 누군가 잘 보살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돈을 받지 않고 넘긴다. 내가 했던 것처럼 말을 아껴달라고 부탁한다. 사랑했던 말이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다면 못할 게 뭔가?

 


2019.05.08 14015:1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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